영화무료로보기 [정동칼럼]약자들은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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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ick20250618025… 작성일25-08-08 07:30 조회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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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내 마음은 그리 설레지 않는다. 그 속도나 밀도는 남다르지만 낯설지 않은 풍경이라서다. 어떤 사건에 사회적 이목이 쏠리면 조사, 감독, 검토, 대책 강구와 같은 것들이 한 차례 휩쓸고 간다. 하지만 유사한 상황과 사건은 기어이 찾아온다. 정부의 분주함에 진심이나 의지가 부족한 탓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변화가 시작되는 곳을 자꾸 놓치기 때문이다. 세상의 많은 문제들은 강자가 제 유리한 위치를 빌려 약자에게 횡포를 부리는 구도로 드러난다. 그래서 강자의 횡포를 금지하거나 처벌하는, 때로는 어르고 달래는 것이 해법으로 보인다. 약자가 부조리한 상황에 대처할 힘을 증강하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업장을 열심히 규제해도 이주노동자가 사업장을 옮길 자유는 주지 않는 식이다. 대책은 실패하고 문제는 반복된다.
“소수자, 약자에 대한 용납할 수 없는 폭력”에 대통령이 분노하는 것의 정치적 의미는 작지 않다. 하지만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은 갑자기 튀어나오지 않는다. 납득할 수 없는 차별과 무시와 강요가 다반사인 일상이 전후좌우에 있다. 괴롭히지 말라는데 멈추지 않고 다시 연락하지 말라는데 집 앞까지 찾아온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그만하라고, 가라고, 멈추겠다고, 입속에서 몇번이나 연습한 말을 주저앉히는 것이 눈앞의 상대만은 아니다.
이주민에게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정부 방침, 직장 내 괴롭힘 의혹이 있는 정치인의 장관 후보자 지명 같은 것들이 모두 신호가 된다. 세상은 네 편이 아닐 거라고, 말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네가 불리해질 거라고. 다른 신호가 필요하다. 당신이 사람으로 동등하게 대접받지 못한다고 여긴다면 언제든 기꺼이 말하라는 신호.
이재명 대통령이 소수자와 약자의 처지에 관심을 기울이면서도 차별금지법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이 내게 그리 어색하지는 않다. 민주당은 차별금지법 발의를 철회하거나 회피할 때도 혐오표현방지법은 곧잘 발의했다. 혐오표현과 차별이 서로 강화하는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두 법은 궁극적으로 유사한 목표를 향한다. 보수 개신교의 반발을 산다는 점에서도 별 차이는 없다. 하지만 누구의 권한을 강화하느냐에 차이가 있다. 혐오표현방지법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와 같은 공적 기구에 혐오표현을 규제할 권한을 준다. 차별금지법은 누구든 차별을 당했다고 여기는 사람이 그 부당함을 주장할 권한을 준다. 추진할 결심이 다른 이유는 보수 개신교 눈치 보기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민주당은 약자가 더 크게 더 많이 말하는 세상보다 약자를 대신해 자신들이 말하는 세상이면 충분한 듯싶다.
약자는 약한 자가 아니다. 약한 위치에 내몰리는 사람들이다. 나 같은 사람은 어쩔 수 없다고 느끼는 동안은 나를 숨기고 말을 참고 세상을 쫓아가는 것이 자신을 지킬 방법이 된다.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이 자꾸 당하는 이유가 내게 있지 않음이 자명해지는 어떤 순간이 오고야 만다. 나를 내모는 세상을 그대로 둘 수 없게 되고 저마다 속도는 다를지언정 멈출 수 없게 된다. 변화는 언제나 약자로부터 시작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힘없고 곤궁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사회의 품격을 보여준다”고 했다.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힘없고 곤궁한 처지에 있는 이들이 얼마나 소란을 일으킬 수 있는지가 사회의 품격을 보여준다. 차별금지법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선언을 계속 환기하며 약자의 시선과 목소리로 세상을 점검하고 고쳐가자는 법이다.
다음주면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가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보이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납득할 수 있을까? 지난겨울을 거치며 차별금지법 없는 세상에 머무를 수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 차별금지법을 만들지 말지 논의할 시간은 지났다. 이제 어떤 차별금지법을 만들지 사회적 논의를 시작하자. 언제나 그렇듯 약자들은 이미 시작했다.
얼음 ‘빙’에 물 ‘수’자 쓰는 빙수(氷水). 인류가 물질의 어는점과 녹는점에 착안해 만들어낸 과자다. 호모 사피엔스, 사람의 꾀는 빙수에도 깃들어 있다.
주재료는 얼음이다. 얼음이든 완성된 빙수든 한여름에 오래 견딜 수 없다. 그럼에도 입속에서 녹아 사라지기 전까지는 버텨야 한다. 제과사는 이를 염두에 두고 빙수를 설계·시공한다. 여기에 유지방이 껴들면 아이스크림이다. 청량음료·냉차·소르베(sorbet)·셔벗(sherbet)·아이스크림은 뒤섞여 있다가 빙수를 통해 의미 있게 분화했다. 빙과(氷菓), 곧 얼음과자의 영역에서 빙수의 의의다.
인공 제빙 기술이 없던 시절에는 어떻게 빙수를 만들었을까? 사람의 꾀에는 집요한 구석이 있다. 아득한 예부터 온 지구에 빙고(氷庫)가 있었다. 만년설의 얼음이든, 꽁꽁 언 강을 깨 켜고 캔 얼음이든, 빙고에 쟁였다가 온열질환에 약으로도 쓰고 빙과도 만들었다. 얼음 보관실의 마감이 석재면 석빙고, 토분이나 회면 토빙고, 목재면 목빙고다. 그 지붕을 짚이나 갈대나 왕골이나 띠로 덮은 빙고는 ‘초개빙고(草蓋氷庫)’라고 한다.
한반도는 어땠을까? 신라 때부터는 빙고를 써먹었다. 당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신당서> ‘신라전’에는 “여름에 음식물을 얼음 위에 둔다(夏以食置氷上)”는 구절이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지증왕 6년(505년) 11월 얼음을 저장한 기록이 있다. <삼국유사>에는 ‘장빙고(藏氷庫)’라는 시설 이름이 남아 있다.
19세기 말이 되자 한여름의 얼음은 인공 제빙 기술 덕분에 대중적인 빙과의 재료로 변신한다. 그러면서 권력자와 부자만 먹던 여름 빙수는 대중에게 퍼졌다. 식민지 시기에 얼음 공장이 돌아가던 서울·평양·인천·부산·마산·대구·영일·대전·원산·함흥·청진은 한반도에서 대중적인 빙수와 빙과의 시대를 열었다. 그러더니 이런 ‘문자 먹방’까지 태어났다.
“얼음의 얼음 맛은 아이스크림에보다도 밀크세-키(셰이크)에보다도 써억써억 갈아주는 ‘빙수’에 있는 것이다.”
“눈이 부시게 하얀 얼음 위에 유리같이 맑게 붉은 딸깃물이 국물을 지을 것처럼 젖어 있는 놈을 어느 때까지든지 들여다보고만 있어도 시원할 것 같은데 그 새빨간 데를 한술 떠서 혀 위에 살짝 올려놓아보라. 달콤한 찬 전기가 혀끝을 통하여 금세 등덜미로 쪼르르르 달음질해 퍼져가는 것을 눈으로 보는 것처럼 분명히 알 것이다.”
“빙수에는 바나나물이나 오렌지물을 쳐 먹는 이가 있지마는 얼음 맛을 정말 고맙게 해주는 것은 새빨간 딸깃물이다. 사랑하는 이의 보드라운 혀끝 맛 같은 맛을 얼음에 채운 맛! 옳다, 그 맛이다.”
잡지 ‘별건곤(別乾坤)’ 1929년 제22호 속 ‘빙수’의 몇 문단이다. 글쓴이는 사회운동가이자 어린이 문학가인 방정환. 이 꼭지는 ‘파영생(波影生)’이라는 필명으로 발표했다. 빙수는 이렇듯 운동가한테서, 운동가의 모습을 얼른 떠올리기 힘든 글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빙수는 먹을거리의 관능과 감각의 표현에서 전에 없던 수사의 동력이 되기도 했다. 빙수가 빙수 한 그릇으로 다가 아니었다.
‘인공지능(AI) 100조원 투자’. 이재명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었으며, 얼마 전 재천명한 핵심 국정과제다. 정말 어마어마한 규모의 정부 투자 사업이다. 물론 100조원을 모두 정부 예산으로 마련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 재정은 마중물이 되고, 대부분은 공공과 민간 자금으로 펀드를 조성해서 조달할 것이다. 하지만 정부 예산이든 공공·민간 자금이든 국민 주머니에서 나온 돈일 테니, 어찌 됐든 시쳇말로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정부 투자 민간 지원사업임은 분명하다.
여론은 긍정적이다. 필요한 사업이며 잘하는 일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한창 외식 바람을 일으키는 중인 민생회복 소비쿠폰 예산 14조원을 두고는 찬반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100조원에 이르는 초거대 사업에 대한 찬반 논쟁이 없는 것은 왜일까? 저쪽은 단기간에 쓰고 나면 없어지는 소비적인 것이지만, 이쪽은 장기적인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생산적인 것으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성장이 제일의 목표인 국가 운영에 익숙한 탓에, 우리 사회에는 모름지기 나랏돈은 소비가 아니라 생산을 북돋우는 데 써야 한다는 믿음이 충만하다. 이걸 두고 시비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 사업이 얼마나 생산적일지 따져볼 필요는 있겠다.
관료 조직, 혁신 지향적으로 바뀌어야
친한 몇몇 경제학과 교수에게 이 사업을 어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모두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과거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반응이었다. 주류 경제학은 시장이 능히 할 수 있는 일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을 반대한다. 시장이 정부보다 효율적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정부가 100조원을 조성해서 투자하면 국가 경쟁력이 올라가기는 할 것이다. 문제는 펀드 조성과 투자를 정부가 주도하는 것과 시장이 맡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경쟁력 제고에 효과적이겠느냐이다. 정부가 펀드를 조성하면 민간 조성 펀드 규모는 줄어든다. 어느 쪽 펀드가 더 효율적으로 만들어지고 운용될까. AI 분야에서 구체적으로 무슨 사업이 필요하며 어느 기업이 잘할 수 있는지를 정부와 민간 자본시장 중 어느 쪽이 더 잘 판단할까. 정부 돈으로 사업할 때와 벤처캐피털 자금으로 사업할 때, 어느 경우에 기업이 더 열심일까. AI 100조원 투자를 지지한 경제학자들에게 이런 점들을 재차 물었더니 과거와는 여건이 달라졌다고 답했다.
미국의 관세폭탄으로 시작된 신중상주의, 중국의 놀라운 도약 속에 급진전하는 AI 혁명. 이 와중에 머뭇거리다가는 영영 뒤처진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해졌고 그로 인해 정부의 적극적 역할을 요구하게 된 것은 분명하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할 것이 있다. 10여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본격화된, 정부의 경제 역할에 대한 패러다임 변화다. 요지는 시장에만 맡겨두면 사회 전체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의 발전은 이뤄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최선의 결정이 사회 전체적으로도 최선은 아니라는 것, 그러니 정부가 개입해서 사회 전체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의 변화와 발전을 이뤄가야 한다는 얘기다.
이런 패러다임 변화를 이끈 학자 중에 영국 런던대학의 마리아나 마추카토 교수가 있다. 그는 인터넷, 스마트폰, 자율주행 등 세상을 변화시킨 혁신 제품 등장에는 정부의 기여가 지대했음을 밝혔다. 그리고 기업만이 혁신을 주도하고 공공은 변화에 소극적이라는 관념은 잘못된 것이며, 정부가 앞장서서 기업과 공조하면서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
내 생각에는 이 대통령의 정책개발 핵심 멤버 중 마추카토 교수의 저작을 읽고 공감한 인사가 분명히 있는 것 같다. 정부 투자로 혁신 성장을 이끌겠다는 문제의식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내용에서도 그의 주장과 일치하는 게 많기 때문이다.
부정·비리 막을 투명한 공개도 필수
마추카토 교수는 기존 정부 지원 정책은 위험의 사회화와 이익의 사유화를 초래했다고, 실패의 손실은 공공이 부담하되 성공의 이익은 기업이 독차지했다고 비판했다. 그러고는 정부가 투자했으면 성공의 과실도 공공과 나눠야 한다고 했다. 이 대통령이 K엔비디아를 육성해 수익을 국민이 누리게 하자고 제안한 내용과 일치한다. 또 정부 투자가 성공하려면 구체적인 목표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나 지원받는 기업은 공익에의 기여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등의 주장도 이번 AI 투자 사업에 상당 부분 반영돼 있다.
마추카토 교수는 지나치게 정부의 순기능만 강조하고 역기능을 무시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의 경제 역할이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오늘날, 혁신 성장과 발전을 위해서는 마추카토 교수가 제안한 요건들이 필요함은 분명하다. 그는 또한 정부가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면 관료 조직이 혁신 지향적으로 바뀌어야 한다면서 다양한 제언을 내놓았다. 이를테면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앨 것, 이해관계자들과 적극 소통하며 아래로부터 위로의 의사결정 체계를 갖출 것, 실패를 용인하고 오류 수정을 권장하는 조직 문화를 형성할 것 등이다. 하나같이 쉽지 않지만, 행정학자로서 십분 동의할 수 있는 것들이기는 하다. 그러니 이러한 관료 조직 개혁도 이번 정부에서 중요한 국정과제로 삼아 착실히 해나가면 좋겠다.
마추카토 교수는 언급하지 않았으나, 100조원 AI 투자 사업 성공에 꼭 필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전 과정의 투명한 공개이다. 이권 있는 곳에는 부정과 비리가 끼어들기 마련이다. 며칠 전에도 국회 법사위원장이 AI 투자 사업 내부 정보를 이용해 주식거래를 한 정황이 드러나서 사퇴하지 않았던가. 이를 원천 차단하지 못하면 ‘정부 돈은 임자 없는 돈’이라는 속설이 또 한 번 확인될 것이고, 신뢰 잃은 사업은 성공할 리 만무하다. 부정과 비리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투명한 공개이다.
자금 형성부터 투자 대상 선정과 배분, 성과 평가, 관련자들의 이해충돌 여부 등 제반 과정을 모두 밝힘으로써 부정과 비리가 끼어들 여지를 없애자. 기왕이면 정부 홈페이지에서 눈에 띄는 곳에, 알기 쉽게, 상세하게 공개하자. 전혀 어렵지 않다. 맘만 먹으면 바로 구축하고 운영할 수 있다. 100조원 중 10만분의 1만 떼어내서 멋들어지게 만들고 앱으로도 내려받게 하자.
나는 제반 정보의 투명한 공개가 100조원 사업 성공의 기틀이 된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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